그러면 누가 세금을 낼까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물건을 사면 10% 부가가치세를 낸다],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를 낸다] 이 정도는 다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과세요건이라고 합니다.
먼저, 세금을 공부할 때는 각 세목의 과세요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세금을 내게 되는 요건입니다. 과세요건을 충족하면, 납세자에게 세금을 납부할 의무, 즉 막연한 납세의무가 안개처럼 생겨납니다. 그리고 신고 또는 결정(고지)를 통해 납세의무가 비로소 선명하게 확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세액을 납부하고 나면 납세의무가 사라집니다. 개념적으로는 이런 순환을 거칩니다.
과세요건 충족→납세의무의 성립→납세의무의 확정→납세의무의 소멸
이때 과세요건은 4가지로 구성됩니다. ①과세물건, ②납세의무자, ③과세표준, ④세율입니다. 보시는 분에 따라 과세요건에 다른 요소를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저는 4가지를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과세요건은 납세의무를 발생시키는 요건이므로, 각 세목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을 공부하면 각 세목의 핵심은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세목이 각 하나의 법률로 규정되어 있는데, 과세요건을 먼저 설명하고, 신고납부 절차를 이야기하고, 절차를 잘 지키지 않으면 어떤 제재가 있는지 설명하고 마무리됩니다. 그 중에서도 법 조문 대부분이 과세요건을 규정하는데 할애되어 있습니다. 납세자의 납세의무 순환구조대로 법률도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1) 납세의무자
납세의무자란, 납세의무를 책임지는 자를 말합니다. 세액이 아무리 많다 한들, 내 세금이 아니면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누가 세금을 부담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납세의무자는 개인일 수도 있고, 법인일 수도 있고, 법인 아닌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일 수도 있고 외국인일 수도 있습니다.
2) 과세물건
과세물건이란 과세의 객체(OBJECT)를 뜻합니다. 시각예술을 예로 들어봅시다. 어떻게 세금을 매길까요? 그림을 1번 그릴 때마다 세금을 매길 수도 있습니다. 그림을 사는 사람이 그림값을 낼 때 세금을 매길 수도 있습니다. 그림을 팔 때 매출에 따라 세금을 매길 수도 있습니다. 그림을 보유하고만 있어도 세금을 매길 수도 있습니다. 뭘 가지고 세금을 매기느냐? 그것이 과세물건입니다. 세법에서는 과세물건이란 무엇이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국세기본법에서 소득, 수익, 재산, 행위, 거래가 과세의 대상이 된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세기본법 제14조)
①소득에 대해 매기는 세금 중 대표적인 것이 소득세와 법인세입니다. 납세의무자는 개인이냐 법인이냐 차이가 있지만, 과세물건은 소득입니다.
②수익에 대해 매기는 세금 중 대표적인 것이 상속세와 증여세입니다. 상속은 피상속인의 사망을 원인으로 재산을 무상이전 받는 것이고, 증여는 살아 생전에 증여계약을 통해 재산을 무상이전 받는 것입니다. 위대한 작곡가나 디자이너가 돌아가시면서 저작권을 남겨준다면, 유족은 상속세를 내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그림을 선물하는 경우 자녀에게 증여세가 부과됩니다.
③부가가치세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과 재화의 수입을 과세물건으로 합니다. 개별소비세는 재화의 반출행위 등을 과세물건으로 합니다.
④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재산을 보유하는 사실에 매기는 세금입니다. 재산 취득행위에 대한 취득세, 재산 등기등록행위에 대한 등록면허세도 있습니다. 증권의 거래행위에 대해 증권거래세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의미들이 크지만, 미술과는 관계가 없어 상식으로 알아두면 충분합니다.
3) 과세표준과 세율, 그 밖에 구성요소
우리나라의 세금은 기본적으로 금전납부를 원칙으로 합니다. 과거 고려, 조선시대에는 조용조(租庸調)라고 해서, 쌀 외에도 특산품, 군역을 세금제도로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세법은 금전납부가 원칙이고, 상속세 등에서만 예외적으로 물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금전납부가 원칙이라면, 과세물건은 반드시 숫자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과세물건을 수치로 표현한 것이 과세표준입니다. 그리고 과세표준에 세율을 곱하면 비로소 세액이 산출됩니다.
과세표준은 과세물건을 수치환산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같지 않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면, 내가 소비자에게 그림을 팔았는데 소비자가 나에게 돈 대신 새 갤럭시 기기를 주었다고 합시다. 분명 경제적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소득이라는 과세물건은 있습니다. 그런데 과세표준은 무엇일까요? 어디에 세율을 곱할까요? 그림의 원가일까요, 시가일까요? 갤럭시 기기의 원가일까요, 시가일까요? 둘이 정하는 가격일까요? 정답은 거래 당시 판매업자의 판매가액입니다. 따라서 갤럭시 기기 시가가 수입금액입니다. (소득세법 제24조, 소득세법 시행령 제51조) 이렇게 과세물건과 과세표준은 차이가 있습니다.
과세표준은 과세물건의 수치환산일 뿐 아니라, 정책상 필요한 가감조정을 거친 결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소득세는 소득을 과세물건으로 하는 세금이지만, 소득이 곧바로 과세표준은 아닙니다. 전년도에 결손이 났다면 올해에 상계하고, 소득공제를 적용하고 나면 비로소 과세표준이 도출됩니다. 법인세에선 각 사업연도의 소득을 계산한 뒤에 전년도 결손(이월결손금), 비과세하는 소득, 소득공제를 차례로 가감한 뒤 과세표준을 도출합니다. 부가가치세법이나 나머지 세목들도 비슷합니다. 세법에서 그렇게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크게 보아 과세표준으로 가기 전에 [결손금, 비과세, 소득공제]의 가감조정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세표준과 세율은 구체적인 숫자를 계산하는 과정입니다. 수식이기 때문에 이해가 필요한 대목이 아닙니다. 과세표준과 세율보다, 과세물건과 납세의무자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과세요건 중에서도 과세물건과 납세의무자를 설명하는 데 무게를 두고, 과세표준과 세율은 필요한 범위 내에서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핵심적인 과세요건 4가지를 위주로 설명했지만, 2가지를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①납세지:납세지란, 납세를 하는 장소, 즉 납세를 하는 공간적 범위를 이야기합니다. 소득세에서는 주소 또는 거소가 어디인지가 중요하고, 법인세에서는 본점 소재지가 중요합니다. 부가가치세에서는 사업장의 소재지가 중요합니다. 요즘에는 홈택스를 통해 신고 납부를 마치는 경우가 많아 큰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②납세의무 성립시기:납세의무 성립시기란, 납세의 시간적 범위를 말합니다. 소득세 과세기간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입니다. 법인세에서는 법령이나 정관이 정하는 1회계기간 등을 사업연도라고 부릅니다. 부가가치세는 일반과세자의 경우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를 제1기,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를 제2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과세기간이 끝나는 때 납세의무가 성립합니다. 상속세는 상속이 개시되는 때, 증여세는 증여에 의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때 납세의무가 성립합니다. (국세기본법 제21조 제2항)
지금까지 과세요건을 설명하고 보니 육하원칙이 떠오릅니다. 실제 법 구조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세법이란 사람의 경제행위를 규율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은 내용도 있지만, 육하원칙에 따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도 세금을 공부하실 때, 과세요건을 중심으로 생각하시되, 육하원칙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누가:납세의무자를 말합니다.
②언제:귀속시기, 납세의무의 성립시기, 신고납부기한을 말합니다.
③어디서:납세지를 말합니다.
④무엇을:과세물건을 말합니다.
⑤어떻게:과세표준과 세율을 말합니다.
⑤왜:세금은 국가의 기반이고, 납세의무는 헌법상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8조)
앞으로 주의하셔야 하는 점은, 각 세목은 다른 세목과 연결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각 세목마다 과세요건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을 이야기할 때는 어떤 세목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혼동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뒤에서 배우시겠지만, 소득세법에서 생존하는 국내 원작자의 작품 양도소득은 과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소득세 규정이지 부가가치세 규정이 아니므로, 부가가치세 과세 요건에 맞으면 부가가치세는 과세됩니다. 반대로 부가가치세는 예술창작품에 대해서 면세하는데, 그렇다고 소득세가 면세되지 않습니다. 소득세법에 따른 과세요건을 충족하면 과세됩니다. 앞으로는 세금을 생각하실 때 세목마다 별개로 과세요건을 충족했는지 따지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각 세목별로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