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세법의 대가 이창희 교수님 저서 [세법강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법에 관하여 배울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세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법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세법이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만 안다면 낭패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세법을 처음 배울 때 느낀 점이, ‘이렇게 세상 모든 분야를 법으로 규정할 수 있구나’였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소득세법의 금융투자소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과 주식, 채권, 파생상품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유튜버를 대리하기 위해서는 외국법인 구글의 유튜브 광고수익 지급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양도소득세 자경농지 감면규정을 알기 위해 농업과 농업인을 알아야 합니다. 보험금에 대해 소득세, 상속세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보험지식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제조업, 도소매업, 서비스업 모든 경제분야에 세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예술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법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국가의 테두리에서 경제행위를 하는 모든 분들은 세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법을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설명을 들어도 어려워하십니다. 그건 세법이 애당초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창 공부하던 시절, 선생님께서 세법은 바다이고, 우리는 거기서 헤엄치고 있다고 표현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법은 법문도 어렵고, 논리도 어렵고, 법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어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 세목이 중첩하여 각자의 세계를 이루면서 경제 행위를 총체적으로 규율합니다. 양도 방대합니다. 세무사에게도 세법은 어려워서, 분야를 정해 특화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세법을 모른다고 국가가 봐주지 않습니다. 법률의 부지(不知)는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세법의 전부는 아니어도 세법의 최소한은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모르면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사실만 기억해도 좋습니다. 그래야 낭패는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낭패일까요? 세금은 국가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특히 제재가 무섭습니다. 은행이자보다 무거운 납부지연가산세는 물론이고, 필요하면 납세자 재산을 압류도 합니다. 탈세는 단순히 국가와 약속을 어긴 정도가 아니라 반사회적인 행위로 보고 조세범처벌법을 토대로 징역이나 벌금 등 징벌로 다스립니다. 납세자가 파산하면 국가가 일반 채권자, 은행보다 먼저 세금을 회수합니다. 세금으로 다툼이 생기는 경우, 3심에 이의신청과 조세심판을 합하여 5번을 다투기도 합니다. 세무조사를 받으면 사업에 큰 지장을 받아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세상이 법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세법을 모르고 경제행위를 한다는 건 참 불안한 일입니다. 경제행위를 하면서 세법을 모르고도 여지껏 문제가 없었다면, 운이 좋아 그런 것이거나, 그 사람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예술가들도 역시 불안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세법은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국세청에서 발간한 가이드를 읽어보는 정도만 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정 자신이 없다면 평소에 전문가를 알아두고서 늘 물어보고, 큰 계약이 있거나 하면 꼭 전문가의 시간을 사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더구나 일반인보다 예술가들에게 세금은 더 중요합니다. 예술가들은 납세자이면서 동시에 정부 보조를 받기 때문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관장하고 있는 창작지원 사업과 레지던시 사업 등을 하려면 문화예술진흥기금이 필요한데, 이는 정부가 출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문화예술진흥법 제17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관장하는 예술인 복지 사업, 요즘 예술인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예술인고용보험사업도 국가의 예산에서 출연합니다. (예술인복지법 제10조의2) 미술관/박물관 관람시 소비쿠폰도 국가 예산에서 나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예산계획을 제출하여 승인을 받고, 정부미술은행은 정부미술품의 수요조사를 거쳐 미술품을 구입예산을 반영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기본운영규정 제4조, 정부미술품 운영규정 제9조)
문화예술사업에 절실한 문예진흥기금은, 2004년 약 5,200억에서 2017년 약 400억원 수준으로 고갈되었다가, 정부의 일반예산의 전입으로 한숨 돌린 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관객에게 준세금 성격인 문화예술부담금을 받아 문예진흥기금을 확충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문화예술부담금이 위헌판결을 받았고, 지금은 일반적인 조세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헌재 2002헌가2, 2003.12.18
이 사건 문예진흥기금 납입금의 위헌성
특별부담금으로서의 문예진흥기금의 납입금이 위와 같은 헌법적 허용한계를 준수하고 있는지 또는 이를 일탈하여 위헌인지 여부에 대하여 살펴본다. 셋째, 공연 등을 관람하는 일부의 국민들만이 문화예술의 진흥에 집단적으로 특별한 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도 발견되지 아니한다. 오히려 이들은 일반납세자로서 공연 등의 관람료에 포함된 부가가치세를 부담함에도 불구하고, 세금의 부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예진흥기금의 납입이라는 추가적인 책임과 부담까지 안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의 진흥은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함께 책임을 져야할 전 국민적이고 전 국가적인 과제라고 볼 때 일부 국민들에 대하여 그들이 우연히 갖는 공연관람의 기회를 포착하여 여기에 기금납입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일종의 책임전가라고 할 것이다.
정부 예산은 세금에서 확충됩니다. 세금이 부족하면 정부 예산이 부족해지고, 문화예술진흥기금도 줄어듭니다. 레지던시가 작아지고, 2명 지원하던 창작지원이 1명을 지원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예술가들은 더욱 간절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세수가 부족하면 그런 예술가들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언제 또 가난한 예술가들의 불행한 뉴스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저로서는 예술지원의 근간이 되는 세금이 특히 소중합니다. 지원금 덕분에 착실하게 경험을 쌓고 미래를 꿈꾸는 예술가 동료들을 보면서, 세금을 내주시는 납세자들에게도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금 제도는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는데도 아주 중요합니다. 과거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 뉴욕으로 옮겨간 것은, 미국의 신흥부자들의 재력이나 추상표현주의의 등장도 중요했지만, 1914년부터 ‘제작된 지 20년이 지나지 않은 유럽 미술품을 수입할 때 면세’하는 법안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대부분이 미술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에 관한 것이기도 한데요, 거기에는 우리 정부가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더욱 잘 와닿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 제도로 인하여 미술 시장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시면 어느덧 깊이가 더해져 전문가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